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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검은 음료’ 커피를 군대에 보급하기 위한 나폴레옹의 노력이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세계사를 바꾸다 “나는 귀하의 나라도 이렇게 만들 수 있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면서 오스트리아 정부 사절단을 향해 한 말이다. 이는 1797년의 일로, 나폴레옹은 동쪽의 맹주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제국을 공격해 사지로 몰아넣은 뒤 강화조약을 거부하는 사절단에게 엄포를 놓았다. 커피를 보면 국가 존망 위기를 떠올리는 나쁜 습성이 몸에 밴 사람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조약에 응했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곧바로 조각난 커피잔 같은 처지가 된 신성로마제국을 빗자루로 쓸어 담듯 공략하며 해체해버렸다. 1804년의 일이다. 이후 1806년 베를린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베를린 칙령을 선포해 대륙을 봉쇄했다(여기서 ‘대륙봉쇄’는 대륙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으로부터 바다를 봉쇄한다는 의미다). 이는 강대국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무릎을 꿇은 상황에서 대서양과 지중해에 이어 발트해마저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천재 전략가 나폴레옹이 단행한 해상봉쇄조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해안이 봉쇄되면 커피도 봉쇄된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내리면서 커피를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는 식용음료로 군대에 커피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왜 자신의 군대에 커피를 보급하려고 안간힘을 썼을까?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검은 음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군대에 대량의 커피를 보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자신의 명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군대에 막대한 양의 커피를 보급하기 위해 대단한 추진력과 실행력을 발휘했다.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직물기계 개량, 인디고 대체용 색소 개발, 새로운 종류의 설탕 제조 등 여러 분야의 발명과 기술 개발에 상금을 걸고 산업혁명을 독려했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독특한 음료 커피는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제패하고 싶은 나폴레옹의 야망과 뒤얽히며 프랑스 산업 전반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유럽과 전 세계 경제를 송두리째 바꾸는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었다(18세기 ‘산업혁명’ 하면 영국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당대 프랑스의 발전상과 기여도는 영국의 그것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군대에 커피를 보급하기 위한 노력이 18세기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 산업 구조를 혁명적으로 뒤바꿔놓는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다.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바친 커피나무 한 그루가 커피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다 18세기, 네덜란드는 커피 재배에 관한 한 유럽 최고의 선진국이었다. 1706년, 암스테르담시는 자바에서 커피나무를 들여왔는데, 그 나무는 전 유럽에서 대단한 호평을 얻었다. 그 무렵 암스테르담시에 부임해 있던 프랑스 영사는 암스테르담시와 오랫동안 교섭한 끝에 커피나무 한 그루를 루이 14세에게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1714년의 일이다. 그해 7월 29일, 마를리 성에 도착한 키 150센티미터의 튼튼하고 어린 커피나무는 왕립식물원 온실에 보내져 뿌리를 내렸고 왕성하게 개체 수를 늘려갔다. 가브리엘 드 클리외는 ‘루이 14세의 커피나무’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해군대위 출신이었는데, 1721년 군복무 중 파리에 잠시 귀국했을 때 사람들이 대량으로 커피를 사고팔며 소비하는 것을 목격한 일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커피는 네덜란드가 자국 식민지인 동인도에서 재배한 것이었다. 드 클리외의 머릿속을 섬광과도 같은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동인도와 서인도, 이름이 같다면 기후와 풍토에도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내가 군복무했던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섬에서도 얼마든지 커피를 재배할 수 있을 것이다.’ 드 클리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담아둔 채 시간을 허비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신속하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어느 지체 높은 부인을 연줄로 삼아 커피나무를 루이 14세에게 직접 가져다 바치는 역할을 맡았던 왕의 주치의 M. 드 시라크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결국 어린 커피나무 한 그루를 얻어냈다. 드 클리외는 그 커피나무를 소중히 지닌 채 낭트를 떠나 마르티니크로 향했다. 1723년의 일이다. 드 클리외는 소중한 커피나무를 햇빛을 잘 받도록 고안된 유리상자에 보관했다. 적도 부근에서 주로 서식하는 커피나무에게 햇빛은 물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생장에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운반 도중 햇빛이 부족하다 싶으면 인공적으로 커피나무에 빛을 비추어주곤 했다. 그런 식으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고는 해도 대서양을 횡단하는 항해는 멀고도 험했다. 그 과정에 드 클리외의 시대적 소명을 시샘한 어떤 승객이 유리상자를 훔쳐가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포르투갈령 마데이라섬 연안에서는 튀니지 해적선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거센 풍랑에 휘말려 난파할 뻔한 일도 있었다. 온갖 고난을 겪은 끝에 드 클리외와 커피나무는 무사히 마르티니크에 도착했다. 파란만장한 시련을 겪으며 드 클리외가 프랑스에서 가져온 커피나무는 놀라운 생산량을 기록했다. 그 시점으로부터 35년여 후인 1759년에 마르티니크와 과달루페는 1,120만 파운드의 커피를 수출했으며, 같은 해에 아이티ㆍ마르티니크ㆍ과달루페의 커피 수확량은 각각 7,000만, 1000만, 700만 킬로그램에 달했다.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서 산출되는 막대한 양의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 커피산업과 커피무역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드 클리외에 의해 시작된 서인도제도산 프랑스 커피가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이슬람 세계의 커피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카이로의 거상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힌 것이었다. 아이티ㆍ마르티니크ㆍ과달루페 커피는 마르세유를 거쳐 커피의 출발지 격인 서아시아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키 150센티미터의 어리고 튼튼한 ‘루이 14세의 커피나무’ 한 그루에서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 가브리엘 드 클리외의 뚝심 있는 노력이 커피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돌려놓는 순간이었다. 한때 화려한 영광을 누린 영국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결국 홍차와 티하우스에 밀려나며 쓸쓸히 퇴장한 이유가 여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커피는 원래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 즐겨 마시던 음료였다. 그 독특한 ‘검은 음료’는 역설적이게도 17세기 유럽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들끓는 욕망을 자극하며 유럽과 전 세계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기 시작했다. 아라비아의 커피는 바다 건너 영국에 ‘커피하우스’를 통해 전파되었다. 영국 런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때는 1652년이었다. 그 역사적인 커피하우스의 문을 활짝 연 이는 영국인이 아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출신의 파스카 로제였다. 그는 레반트를 무대로 활약하던 상인 대니얼 에드워즈의 시종이었는데, 매일 아침 주인을 위해 커피를 끓이던 습관이 커피하우스 창업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지 30여 년 만인 1683년에 3,000여 곳, 1714년에는 8,000여 곳으로 늘어났다. 아무것도 없다시피 하던 영국은 ‘없는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는 커피하우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커피산업이 급성장하던 17세기 후반의 상황이다.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커피하우스는 영국이 맞닥뜨린 당대의 시대 상황ㆍ니즈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커피산업과 커피문화의 급성장으로 이어지며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영국에서 커피하우스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까지 런던 시민생활의 중심을 차지하던 커피하우스는 18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실제로 1714년에 8,000곳을 넘어섰던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1739년에는 551곳으로 줄었다는 통계가 발표될 정도였다. 한때 영원할 것처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영국 커피하우스의 열기는 왜 갑자기 시들해졌을까? 그리고 그 열기가 홍차와 티하우스로 옮겨 붙은 주요 원인은 뭘까? 우선, 영국 커피하우스가 사회적 기능을 다했다는 점을 주요한 이유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흥미롭고도 인상적인 요인을 한 가지 더 들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애초에 영국 커피하우스가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며 탄생하고 성장했기에 결국 ‘여성 청원’ 등 거센 반발에 부닥치며 직격탄을 맞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영국의 커피와 커피하우스의 운명을 바꿔놓는 데 그치지 않고, 홍차를 매개로 한 중국과의 아편전쟁으로까지 비화하며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마시던 검은 음료’ 커피가 역설적으로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욕망을 자극하며 유럽과 세계를 제패한 이야기 교보문고 65주 연속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교보문고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2021년 교육청 학생교육문화원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교보문고 CEO를 위한 북모닝도서(『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등 주요 온 · 오프라인서점에서 베스트&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꾸준히 판매되며 내용과 가치 면에서도 인정받은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가 이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을 출간했다.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가 바로 그 책. 커피는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을까?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는 ‘‘커피는 원래 와인이었다’라는 말의 숨은 의미는?’, ‘커피가 ‘니그로의 땀’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불리게 된 은밀하고도 잔혹한 이유는?’, ‘커피문명과 전쟁은 왜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일 수밖에 없는가?’ 등 커피를 둘러싼 근원적 의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날카롭게 통찰한다. 또한 이 책은 ‘커피와 카페가 없었다면 프랑스 계몽주의 운동도 프랑스대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독일혁명의 트리거를 당긴 것이 커피였다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의사들에게 명령해 ‘커피에 독성분이 있다’는 거짓 소문을 내게 한 까닭은?’, ‘프로이센 시대 독일인이 반나폴레옹 해방전쟁에 나선 이유는 ‘진짜 커피’에 대한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다?’ 등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도구로 마시던 ‘검은 음료’가 역설적으로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검은 욕망’을 자극하며 아라비아와 유럽, 나아가 전 세계를 제패한 흥미롭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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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막막할 땐 스토아 철학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가 현대의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다. 이 책 《인생이 막막할 땐 스토아 철학》은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통해 심각한 문제가 닥쳤을 때에도 내 마음과 삶을 평온하고 원만하게 유지하는 법을 일러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놀랄만치 현대적인 스토아 철학 속에서 독자들은 나 자신을 잘 다스리는 방법, 폭풍 같은 시련이 닥쳤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고 정서를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 일에 흔들리거나 타인 때문에 화내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자인 요나스 잘츠게버는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은 비교적 접하기 쉬우나 이 철학의 요점을 정리해 보여주는 책이 없다는 데 아쉬움을 느껴, 스토아 철학의 지혜를 이해하기 쉽게 실용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1부에서는 철학의 가르침과 역사, 주요 철학자들, 저자가 구상한 ‘스토아 철학의 행복 삼각형’으로 제시된 핵심 원리 등을 개관한다. 이론 수업을 마치고 윈드서퍼가 바다로 뛰어들듯이, 2부는 우리가 철학을 일상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게 하는 실제적인 조언과 원칙들로 가득하다. ‘살아갈 힘을 어디에서 얻을까?’ ‘어떻게 두려움과 마주해야 할까?’ ‘일이 힘들고 귀찮을 때는 어떻게 할까?’ ‘반복되는 우울한 감정은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들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고대의 철학 학교에서는 배울 수 있었던 삶의 기술을, 더욱 복잡한 시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배우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삶을 이끌어줄 철학이 필요하다. 스토아학파의 한 사람인 에픽테토스가 “철학 학교는 일종의 진료소와 같다”라고 말했듯이,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고 중요한 심리적 통찰력을 많이 갖추었다. 스토아 철학은 인생이 막막해질 때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안 좋은 감정을 다스려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그들은 모욕적인 말이 해로운 이유는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모욕적인 말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토아학파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부정적 감정을 방지하며 처리하는 방법을 발전시킨 것은 현대의 긍정심리학과도 연결된다. 아무리 좋은 철학도 못 쓰면 무용지물! 실전 원칙 55가지로 삶에 철학을 적용하라 세네카는 우리를 집어 삼키는 강렬한 부정적 감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노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건전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다. 정념이 마음에 자리 잡도록 허용된다면 이성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세네카는 우리 삶을 평온하게 이끄는 철학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타격을 둔하게 하는 철학의 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어떤 무기도 철학을 점령할 수 없다. 철학은 잘 보호되어 있고 뚫리지 않는다. 철학은 무기의 힘을 무력화하고 철학을 감싸는 보호막의 느슨한 구김살로도 무기를 막아낸다. 마치 무기가 해를 끼칠 힘이 없었던 것처럼.” 철학, 특히 스토아 철학은 폭풍처럼 널뛰는 감정으로부터 나를 감싸는 보호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저자는 “미안하게도 비결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힘든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하는 데 유용한 구체적인 원칙들을 마련해두었다며 회복력, 자신감, 평정심을 얻게 해줄 55가지 실전 원칙을 제시한다. □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 □ 자발적으로 불편해져라 □ 불필요한 일을 없애라 □ 시간을 평가하라 □ 분노보다 용기와 침착함을 선택하라 □ 내 기대치를 탓하라 □ 평정심을 되찾아라 □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 선을 행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라 □ 삶을 훈련으로 여겨라 □ 나 자신 외에는 판단하지 말라 등. 이 원칙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우리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준비 단계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우리가 삶의 도전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며, 약간 시간을 들여 훈련하면 언제 어디서든 행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삶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원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들 속에서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힘든 인간관계를 위한 원칙’으로, 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이다. 저자는 시합을 앞둔 프로선수처럼 매일 삶이라는 훈련장에 나와서 이러한 원칙들을 연습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훈련법으로 자발적으로 불편해지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 아침에 하루를 준비하는 일과를 꾸리기, 저녁에 하루를 평가하기, 본보기 정하기, 불필요한 일 없애기 등을 제안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부정적 시각화’(Negative visualization)이다. 이는 나쁜 일을 예측하고 그려보는 상상력 훈련으로, 이런 훈련으로 우리는 침착성을 유지하고 삶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세네카의 말을 기억하자. “행운의 여신은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부담을 지운다. 항상 경계하며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 잘 견딘다.” 삶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으면 스토아 철학의 원칙으로 살아가기 쉽지만 삶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타격을 가하면 우리가 훈련했던 것들은 곧장 시험대에 오른다. 마이크 타이슨은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스토아 철학은 내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외부의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해석’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문제와 사건이 닥치든 그것을 ‘힘들다’ ‘괴롭다’ 해석하지 않으려 애쓰면 나는 곧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실천을 위하여 고통을 판단하지 말기, 분노하는 대신 평온해지기로 결정하기, 두려움에 익숙해질 때까지 이를 회피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하기,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기대하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노력하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 모욕은 잊고 모범 보이기 등의 원칙과 방법이 마련되어 있으니 독자들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따라 가면 된다. 에픽테토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비참하게 난파당할 수도 있다. 괴로운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그러니 우리는 삶을 평온하게 이끌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부담 갖지 말고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을 인생이 막막해지는 순간마다 기억하려 애쓴다면 내 삶이 덜 흔들리는 길, 내 감정이 덜 요동치는 길로 어느 새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두 회사의 소유주로서,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그중 스토아 철학은 처음 접한 순간부터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특히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자 축복이었다. 저자는 수세기에 걸친 멋 진 철학을 이 한 권에 간결하게 정리해냈고, 스토아 철학의 본질을 이해하게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배운 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_ 아마존 독자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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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송,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를 찾은 73세 리송의 설레는 일상 리송은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는다. 73세 청춘, 인생의 어떤 기간보다 활기차게 매일매일을 설렘으로 맞는다. 저자인 리송은 “꿈을 꾸지 않는 한 꿈은 시작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다면 함께 시작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살자. 나의 얘기를 듣고 그런 용기를 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라고 말한다. ‘행복한 나’로 살려면 ‘지금’ 시작해야 한다 ‘빈둥지증후군’을 겪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자신이 아니라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다 보니 ‘나’를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자녀도 손주도 서서히 내 손을 떠난 후 ‘나’를 돌아보니 ‘나’를 위해서는 뭘 하고 살았나 허무함이 남는다. 리송처럼 모델을 해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고, 악기를 배워도 좋다.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 살아보자.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지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 저자 리송은 70세까지 주부로 살다가 시니어 모델을 시작했고, 모든 일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지 않은 일,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할 필요를 못 느낀다. 패션모델, 광고모델, 한국시니어모델협회(KMA) 시니어 모델 초대 분과위원장, 저자, 강사 등 한계를 두지 않고 진행 중이다. 『리송,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나를 위해 한 발을 내딛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행복해진다는 걸 체험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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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철학
불안하다는 거짓말 이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시간 ‘불안’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동안 그 원인, 즉 과거의 경험이나 내면의 감정, 현실적 문제에 집중해 이를 파악하고 제거함으로써 불안을 상쇄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만 접근한다면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끌어안고 불안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기시미 이치로는 불안의 ‘목적’에 주목한 아들러의 관점에서 불안을 바라보기로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불안해하는가? 아들러에 따르면 불안은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이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불안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불안은 무엇이고, 왜 지금 불안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 왜 지금 불안을 읽어야 할까? 과거의 경험은 크건 작건 현재와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사건은 때때로 그 사람의 삶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욕심 많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사를 오가다 회복한 뒤에 베푸는 삶을 살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바이러스로 인해 경험한 팬데믹은 그야말로 우리 삶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우리 모두의 삶은 위태로웠다가 이제 간신히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전 세계에 경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불안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불안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걸 경험했다는 것을. 그래서 기시미 이치로는 말한다. “극도의 불안을 경험한 지금이야말로 내재된 불안을 깨뜨릴 수 있다.”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불안해하는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폭등, 주식 폭락 등의 경제 위기,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는 기후 변화 위기는 인류에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불안은 이런 사회 제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진짜 개인을 위협하는 불안은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날까 봐, 일이나 학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할까 봐, 돈을 벌지 못하게 될까 봐, 병에 걸려 주변에 민폐를 끼칠까 봐,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 봐 등등 대인관계, 일과 학업, 건강, 노화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은 이렇듯 삶의 전반에 걸쳐 있다. 이런 불안의 실체를 찾아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감당하기 버거운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그 인생의 과제라는 것도 결국 주변과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낸 숙제일 뿐이다. 숙제를 낸 것도, 숙제를 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도 우리 자신인 셈이다. ∥ 내 삶의 이유를 다시 쓴다면 뇌경색으로 쓰러져 생사에 기로에 서 있다가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회복한 기시미 이치로는 비로소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깨닫는다. 그리고 이런 커다란 경험을 한 뒤에 인생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 미래는 물론이고 당장 몇 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우리에게 불안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이유로 주저앉느냐, 어차피 불안은 피할 수 없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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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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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때문에
그레천 매컬러 어크로스
MK 평점53,645점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을유문화사
MK 평점16,20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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