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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 송

질 르루아 지음임미경 옮김문학동네

304p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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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차 세계대전 이후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정신적으로 표류한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피츠제럴드는 현대 미국문학의거대한 지평을 연 작가이다. 데뷔작 [낙원의 이쪽]으로 하룻밤 만에 스타로 떠올라 [위대한 개츠비]로 T. S. 엘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등 당대 최고 문인들로부터 천재로 칭송받았던 그는 소설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스캔들을 일으키며 한 시대의 우상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그런 명성이 그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영혼의 쌍둥이, 아내 젤다 세이어가 언제나 함께했다. 그들은 이른바 스캔들로 돈을 버는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남부의 명망 높은 가문 출신인 젤다는 단순히 피츠제럴드 소설 속 여주인공들의 모델이자 영감을 불어넣은 뮤즈라는 수식에 갇히지 않는 걸출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문학에서도 삶에서도 그와 경쟁했으며, 유명세와 알코올중독이라는 ‘멋진 시궁창’을 함께 누볐던 존재다. 그 시대 청년들이 꿈꾸던 삶을 문학과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하려는 공통의 야망을 가진 두 사람은 브로드웨이 거리의 화려한 전광판과 잡지 표지를 수놓으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 뒤에 찾아온 쓰라린 좌절의 시간과, 빼앗긴 재능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은 두 사람을 각기 알코올중독과 정신병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비극적이고도 쓸쓸한 최후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은 복권되어 널리 사랑받는 반면 젤다는 여전히 그의 재정적 궁핍과 정신적 몰락을 가속화시킨 주범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 작가 질 르루아는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간 [앨라배마 송]에서 피츠제럴드의 배경으로 밀려나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인물로 취급되었던 젤다에게 제 목소리를 찾아준다. 이 소설에서 젤다가 들려주는 진실이란, 피츠제럴드가 그들이 함께한 삶을 혼자만의 이름으로 작품에 이용했으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정당한 평가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질 르루아는 이와 같은 피츠제럴드 커플의 이야기를 놀랍도록 섬세하고 생생한 문체에 실어 들려준다.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젤다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쓴 소설”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을 만큼 [앨라배마 송]은 다시 살아난 젤다의 목소리 그 자체다. 떠나간 옛 사랑을 통해 미국 남부 문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또 그 덕분에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르루아는 마침내 피츠제럴드 커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고, 피츠제럴드의 전설에 가려 있던 젤다를 되살려냈다. [앨라배마 송]은 2007년 르노도, 메디치, 페미나, 공쿠르 등 프랑스 4대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이자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재즈시대 뉴욕과 파리를 사로잡은 두 낭만적 에고이스트
“그들은 결혼을 한 게 아니라 광고계약서에 서명했다.”

젤다의 일인칭 서술로 진행되는 [앨라배마 송]은 1940년 피츠제럴드의 죽음 직후 하일랜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젤다가 스콧과 함께한 22년간의 사랑과 파탄을, 그 영광과 회한의 나날을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1900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난 젤다 세이어는 대법관의 딸이자 상원의원과 주지사의 손녀라는 화려한 백그라운드와 미스 앨라배마에 등극할 정도의 미모를 겸비한, 이른바 딥 사우스 지역에서 ‘여왕’으로 군림하던 서던 벨(Southern Belle)이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인 유럽으로 떠나는 군부대가 몽고메리에 주둔하면서, 젤다는 양키 장교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잘생긴 외모에 멋스러운 옷차림으로 댄디보이로 명성이 자자했던 피츠제럴드는 비누 세일즈맨으로 몰락한 아버지 밑에서 상류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교육받아온, 재능과 야망 넘치는 청년이었다. 젤다는 유력 가문과의 혼사를 성사시키려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각종 지면에 발표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자 결혼을 감행한다.
1920년대 재즈시대가 도래하면서 두 사람은 재능과 미모, 스캔들이라는 삼박자를 겸비한 커플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욕과 파리를 사로잡는다. 당대 모든 예술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 그들은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 장 콕토, 레몽 라디게 등과 교류하며 문학사상 가장 찬란한 술과 장미와 파티의 나날을 수놓는다.
삶에서 극단과 무절제를 추구했던 이들 커플은 짧고도 화려한 성공 뒤에 길고도 쓰디쓴 내리막을 걷게 된다. 스콧의 성공을 질투하며 ‘망가지는 조연’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위치를 불만스러워했던 젤다는 1925년 프랑스인 조종사 에두아르 조장과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젤다의 인생에서 그 한 달은 짧지만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고, 스콧은 작가답게 소설로 그녀에게 복수한다. 그즈음부터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젤다는 의사들에게 스콧이 줄곧 자신의 글을 몰래 읽고 작품에 도용해왔으며 공동 저작으로 발표하기로 한 작품들에서조차 자신의 이름이 빠졌다고 털어놓는다. 허세 가득하고 남성다움을 과장하지 못해 안달인 미국 작가 루이스 오코너(명백히 헤밍웨이를 가리키는 인물)와 스콧이 어울리면서 젤다는 두 사람의 동성애적 관계를 의심하며 정신적으로 더욱 궁지에 몰린다.
그후 작가로서 더는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 스콧은 할리우드에서 별볼일 없는 시나리오들을 쓰고, 자살과 방화를 기도하던 젤다는 앨라배마 고향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림자처럼 살아간다. 1940년 스콧의 사망 소식을 들은 그녀는 ‘지구라는 대합실’을 떠나 자신만의 궤도를 찾아간 사람들을 하나둘 추억한다.

“1920년대가 곧 그들이었다” _ 릴리언 기시
피츠제럴드 문학 전반에는 ‘부와 성공에 대한 열망’ ‘사랑하는 미녀를 차지할 수 없는 신분의 장벽’이라는 콤플렉스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에게 첫사랑 지니브러 킹과 아내 젤다는 그러한 갈망의 현현이었다. 매번 자전적 경험을 소설로 승화시켜온 만큼 그의 소설들은 스콧과 젤다 커플의 연대기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젤다 세이어는 어디까지나 예술가에게 영감을 제공한 뮤즈, 혹은 너무 뛰어난 탓에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받고 정신병원에 유폐된 여자들 중 한 명인 걸까? [앨라배마 송]에서 작가인 질 르루아는 젤다의 목소리를 통해 그렇게 보이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다라는 것이다. 스콧이 상류층 여자인 젤다의 재기와 후광을 이용하려 했다면, 젤다는 미국 남부의 근엄한 도덕적 구속과 케케묵은 가문의 이름에서 달아나기 위해 스콧을 이용했다. 그러나 단순히 ‘이용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닮은꼴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고, 결국 경쟁 상대이자 동업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서로에 대한 존재이유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르루아의 생각이다.

“아! 구포, 나의 종이인형, 나의 익살광대! 그와 나, 우리는 아주 비슷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둘 다 사교계의 소문난 춤꾼이었고, 둘 다 늦둥이였고, 둘 다 응석받이에 성가신 아이였다. 또한 나처럼 그도 학교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좀더 잘할 수 있는’ 명석한 이인조.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품은, 그래서 애초부터 좌절을 선고받은 두 피조물.” _63p.

두 사람을 이토록 단단히 묶어주었던 끈이란 다름 아닌 그 시대 청년들이 꿈꾸던 삶을 그대로 연출하려는 야망이었다. ‘어차피 문명이라는 이름의 이 대전, 낡은 세계의 이 도살자가 우리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죽일 테니’ 그전에 파티와 재즈와 흘러넘치는 알코올 속에서 삶을 남김없이 탕진해버리자! 이것이야말로 1920년대의 도덕이자 위대한 야망이었다. 자신들 안에 깃들어 있던 절망을 또다른 형태인 스캔들과 방탕으로 연기하며 소진했던 세대. 그런 절망은 다른 말로 ‘이상에 대한 추구’ ‘순수에의 동경’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이란 절망의 동의어이며 파국은 예정되어 있고 그들의 절망감은 절망의 연기를 낳게 했다. 즉, 스콧과 젤다는 현실에서 이탈하려는 몸부림을 연기하는 것, ‘시대의 종이인형’이 자신들의 숙명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던 환상의 이인조였다. 그런 스콧과 젤다를 가리켜 할리우드의 대배우 릴리언 기시는 “1920년대가 곧 그들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가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에서 ‘앨라배마 송’이라는 제목을 빌려온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환멸의 연기, 궤도 이탈의 몸짓, 파괴의 겉치레. 그것은 삶을 향한 로맨틱한 준비이자삶에 대한 또다른 희망과 열정의 표현이었다.
저자소개
질 르루아 1958년 파리 근교 바뉴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독학으로 미국문학과 일본문학을 공부했다. 1987년 첫 소설 [하비비]를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나중된 자가 먼저가 되리라](1991, 낭테르 상 수상), [마담 X](1992), [공원](1994), [세상의 주인](1996), [슬롯머신](1998, 발레리 라브로 상 수상), [검은 태양](2000), [러시아 연인](2002), [성장](2004, 밀파주 상 수상), [비밀의 장](2005) 등의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내밀하고 섬세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리고 2007년, 전작 [비밀의 장] 집필중 재즈시대를 풍미한 세기의 커플 피츠제럴드 부부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뒤, 얼마 후 [앨라배마 송]를 발표, 르노도, 메디치, 페미나, 공쿠르 등 프랑스 4대 문학상 후보에 모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작품은 “불꽃같은 문체”(베르나르 피보), “글쓰기의 비범한 경지”(프랑수아즈 샹데르나고르)라는 심사평을 받으며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2005년 프랑스 예술원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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