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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의 탄생

박종기 지음휴머니스트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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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 조선 최고의 역사책 [동사강목], 그 탄생 과정을 복원하다!

이 책은 최초로 [순암집]과 [성호전집]에 따로 실려 있는 순암과 성호가 주고받은 편지를 시기별로 정리하고 내용에 따라 문답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동사강목]의 탄생 과정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기존의 [동사강목] 연구가 단순히 [동사강목]의 내용 자체 분석에 치중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또한 [동사강목]이 순암의 저서이지만, 편지를 통한 스승 성호의 가르침과 두 사람의 역사대화를 배제하고는 [동사강목]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새로운 주장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뿐 아니라, 역사서술과 인식의 중심문제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1~4부에서는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과 함께 편지에 드러나는 고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영토, 사건, 인물에 대한 두 역사가의 역사인식을 분석하고, 그것이 [동사강목] 서술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소개한다. 역대 왕조의 기원과 영토 강역 같은 문제 외에도 단군의 수명(壽命), 신화 속 진실, ‘조선’ 명칭의 유래 등 다양한 역사 쟁점을 살필 수 있는데, 특히 당대 가장 현대사였던 고려 말 우왕과 창왕에 대한 재해석과 고려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가 흥미롭다.

5부에서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동사강목]의 유통과정을 통해 [동사강목]이 근대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 편찬에 미친 영향을 살피고, 현재 남아있는 다양한 종류의 [동사강목] 판본을 비교분석하여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밝혀낸다. 부록에서는 순암과 성호가 주고받은 편지 가운데 역사에 관한 문답 내용과 [동사강목] 초고본에서 순암이 수정한 목록 등의 자료를 제시하여 [동사강목]의 완성 과정을 더욱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한 권의 역사서를 편찬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18세기 두 조선 역사가의 편지를 통해 [동사강목]의 역사적 가치는 물론이고, 18세기 중반 역사가들의 역사인식과 당대의 주요 역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두 역사가가 남긴 편지 속 역사대화를 통해 새로운 한반도의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동사강목]은 두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역사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얘기가 [동사강목] 편찬에서 순암의 노력과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연구는 자료와 기억의 거대한 창고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다듬는 작업이다. 결코 혼자서 이루어낼 수 없는, 인식과 경험의 공유가 필요하다. 앞선 세대의 인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창조적 역사연구의 첫걸음이다. 순암은 스승 성호의 경험과 인식을 온전히 받아들여 이를 자신의 역사서술과 편찬에 내면화했다. 한 권의 역사서를 편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두 사람의 편지 속에 고스란히 담긴 경우는 [동사강목]이 유일하다. 편지 속에는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 역사서술과 인식의 중심문제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p.7)

2. 스승과 제자의 역사 편지로 엮어낸 [동사강목]

순암과 성호의 편지 가운데 역사에 관해 논한 것 대부분이 역사서술과 해석에 있어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룬 것이다. 따라서 편지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동사강목]의 주요 내용과 논점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고 박종기 교수는 말한다.

순암과 성호가 집중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때는 1754년부터 1760년까지 순암이 [동사강목]을 집필하던 시기다. 순암은 편지로 스승에게 영토와 강역, 지리 고증, 사료 해석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지며 의견을 구했고, 성호는 이에 일일이 답하며 제자의 역사책 편찬 작업을 격려했다. 실제로 [동사강목]에는 성호의 조언과 답변에 따라 서술의 방향과 내용이 확정된 부분이 적지 않아서 스승의 편지가 [동사강목] 편찬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종기 교수는 [동사강목]에 담긴 순암의 독창적 역사인식에도 주목했다. 1760년 일차적으로 [동사강목]을 완성하지만, 성호 사후(死後) 30년간 계속된 수정과 보완 작업을 통해 순암 특유의 역사인식이 [동사강목]에 반영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금기시되어온 고려 말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해 ‘폐가입진’을 부정한 서술은 성호와 주고받은 편지 내용과 달라 수정 과정에서 역사인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235쪽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암이 편찬 과정에서 부딪혔던 여러 문제에 대해 스승과 편지로 묻고 답하는 과정은 [동사강목] 편찬의 주요한 과정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를 문답 형식으로 재정리하여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을 재구성하고, [동사강목]의 서술 분석을 통해 당대 역사학의 주요 쟁점과 역사인식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순암의 [동사강목] 저술 방식은 기존 역사서와 여러 학인들의 사론을 빠짐없이 섭렵해 활용하면서 실증의 차원에서 역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동사강목] 저술에서 가장 돋보이면서 독창적인 모습은 편지를 활용해 사실을 보완 수정한 독특한 저술 방식이다. [동사강목]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강역과 지리 고증, 인물평가 및 개별사실의 고증은 순암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순암이 볼 때 이러한 문제는 충분하게 해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과거 역사가들의 해석에 만족하지 않은 것들이다. 순암은 여러 자료를 참고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주로 스승인 성호와 주변 선배, 동료 학자 들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을 교환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두 사람의 학연을 이어준 편지’ 중에서/ p.40)

순암은 35세 때인 1746년(영조22) 10월 처음 성호 선생을 뵙고, 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이듬해 9월에 다시 성호 선생을 만나고, 이후 1748년(영조24) 12월, 1751년(영조27) 7월 모두 네 차례 선생을 직접 만난다. 5년간 순암이 성호와 직접 대면한 것은 네 번에 불과하다. 비록 직접 대면한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순암은 스승에게 수많은 편지를 올려 역사는 물론 각종 의례와 경전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묻는다. 앞에서 소개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간 수많은 역사 편지는 네 차례 만남으로 맺어진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접 대면은 물론 편지를 통한 스승 성호의 조언과 격려는 단순히 저술을 권유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이 저술의 완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저술은 두 사람의 공동 저술이라 해도 크게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스승 성호, 역사서 편찬을 권유하다’ 중에서/ pp.47~48)

3. 최초의 역사교과서에 기초가 된 [동사강목]

18세기에 편찬된 [동사강목]이 구한말 필사본의 형태로 널리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개항 이후 ‘서세동점’이라는 위기의식과 ‘문명개화’라는 시대의 과제 앞에서 새로운 가치관 확립을 위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100여 년 전에 편찬된 역사서이지만,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역사를 담은 [동사강목]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동사강목]을 필사해 보급했고, 1915년 조선고서간행회가 조선왕실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활자로 간행하면서 [동사강목]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또 갑오개혁 이후 근대교육이 제도화되면서 학교 교육에서의 역사교육이 강조되어, 역사교과서 편찬에도 [동사강목]의 서술과 역사인식이 반영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채호와 정인보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동사강목]에서 고증한 지명과 역사사실을 활용하기도 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역사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던 [동사강목]이 해방 이후부터는 역사자료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비해 늦게 편찬된 사료라는 이유에서 외면 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순암의 철저한 고증 정신을 기반으로 한 역사 서술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는 오늘날 역사연구에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며, [동사강목]의 편찬과 완성 과정을 보여주는 성호와 순암의 편지 역시 18세기 역사학의 수준과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사료다.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은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역사를 서술한 통사로서, 전근대에 편찬된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의 역사를 다룬다. 또한 기존 역사서에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 기록하는 등 내용 면에서도 어느 역사서보다 알차고 풍부하다. 유교와 유교 역사학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며 인색한 평가를 내린 민족주의 역사가 신채호(1880~1936)조차 유교 역사가인 순암을 높이 평가했다. “안정복은 평생을 오직 역사학 연구에 전념한, 500년 이래 유일한 사학 전문가라 할 수 있다. …… 연구의 정밀함은 선생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 지리의 잘못을 교정하고 사실의 모순을 바로잡는 데 가장 공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신채호, [조선상고사], 총론)
(‘들어가며: 동사강목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중에서/ p.17)

1899년 현채(玄采)가 편찬한 [보통교과동국역사]는 김택영(金澤榮)의 [동국역대사략]을 소학교용의 보통교과로 보완, 재정리한 교과서다. 이 책의 첫머리에 ‘역대일람’과 ‘역대왕도표(歷代王都表)’가 구한말 국사교과서에 처음 등장하는데, [동사강목]의 편찬 체제를 계승한 것이다. 신라의 세 여왕을 모두 여주(女主)로 표기한 것 또한 [동사강목]의 범례와 서술을 따른 것이다. 또 단군에 관한 서술은 [동사강목]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는 등 대체로 1895년부터 1910년까지 대부분의 교과서는 [동국통감], [동사강목] 등 기존 통사류를 요약하거나, [동사강목]과 같이 마한 정통론에 의거해 단군조선-기자조선-마한-(삼국무통)-통일신라-통일고려로 이어지는 통사 체계로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구한말 동사강목의 유통과 역사교과서’ 중에서/ p.288)
저자소개
박종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부곡인과 부곡 집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및 한국중세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천광역시의 강화고려역사재단 대표이사(비상임)를 맡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접목, 역사와 현실의 일체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상 수립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 책 [고려사의 재발견]은 그러한 저자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지은 책으로는 [고려의 부곡인, 으로 살다](2012), [새로 쓴 5백년 고려사](2008),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2006),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2002), [고려시대 부곡제 연구](1990)를 비롯해 공저로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2011), [길 위의 인문학](2011) 등이 있다.

“현재와 미래의 삶과 무관한 역사는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현재, 미래와 연결되지 않는 과거(역사)는 죽은 역사에 불과하다. 나와 우리, 우리 사회와 국가의 현재, 미래와 연결되는 역사라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과거를 읽고 반추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다. 살아 있는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역사이다. 모든 역사는 이런 관계 속에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고려왕조의 역사는 우리에게 좋은 교과서이자 역사적 사고와 상상력의 자산이다.”
목차
들어가며 : [동사강목]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동사강목]은 어떤 책인가|1760년, 초고본이 완성되다|순암, 세손 정조를 만나다|세 차례에 걸친 수정 작업

제1부 조선 최고의 역사책을 만든 역사 편지
1. [동사강목] 어떻게 서술했나
사마광과 주희의 책을 모범으로 삼다|강목체 서술의 완성도를 높이다
2. 두 사람의 학연을 이어준 편지
역사 편지로 엮은 [동사강목]|순암과 성호가 주고받은 편지들
3. 스승 성호, 역사서 편찬을 권유하다
순암, 저술을 결심하다|스승과 제자의 첫 대면
4. 저술에 앞선 기초 작업
역사책을 검토하다|편찬 원칙을 검토하다|역사사실을 고증하다
5. [동사강목], 6년간의 집필
범례와 부록을 먼저 완성하다|건강 악화로 중단된 저술 작업|1760년, 초고본 집필을 마치다

제2부 영토 지리 문제와 강역의 고증
1. 강역과 지리를 중시한 순암의 역사학
영토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부족하고 부정확한 자료로 애를 먹다|[동사강목]에 앞서 편찬한 ‘지리고’
2. 상고와 고대의 영토와 영역
만주의 지정학적 중요성|만주는 단군과 기자조선의 영토|[동사강목]에 서술된 단군 기자조선의 영역|안시성과 황룡국 위치에 대한 견해 차이
3. 고려시대의 영토문제
공험진은 길주 이남에 있다|선춘령과 고려의 영토 범위|철령위는 고려의 영토|합란과 쌍성의 지명과 위치|대마도는 우리나라 영토?
4. 삼강(三江)의 위치
삼강의 위치를 둘러싼 견해 차이|다양한 견해를 보인 패수의 위치|성호, 패수는 예성강이다|순암, 패수는 대동강이다|열수는 대동강인가, 한강인가|대수는 한강인가, 임진강인가|살수는 청천강이다

제3부 편지에 담긴 [동사강목]의 세계
1. 단군조선의 이해
단군-기자-마한 정통론을 제기하다|단군 기자조선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팽오는 단군의 신하가 아니다|동이 속에 구이가 있다|단군은 1,000년을 살았다|단군조선의 역사공간은 요의 땅|이계 상참은 예나라 재상 참이다|기자의 단군 축출론을 부정하다
2. 기자조선의 이해
주 무왕의 혁명을 인정한 기자|기자는 왜 조선으로 도망하지 않았나|기자, 주나라에 통치교과서 ‘홍범’을 전하다|유산으로 남은 기자조선의 법과 문화|평양에 남아있는 기자 정전
3. 마한과 삼한의 이해
조선과 삼한의 뿌리|선비산에서 유래한 조선의 명칭|중국 한나라 유민이 삼한을 세우다|한나라 유민, 서복과 한종|진나라 유민이 정착한 진국과 진한|진 제국의 유산, 경주의 원전|변한과 과야는 같은 나라인가
4. 삼국시대의 이해
신화 속에도 역사적 진실이 있다|[삼국사기]의 오류와 비판하다|백제와 부여, 고구려 역사에 대한 의문|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고구려를 중흥시킨 을파소|절의를 저버린 최치원
5. 고려 국왕에 대한 평가
고려왕실의 조상은 당나라 왕실인가|왕실의 출생 설화와 왕씨 성의 유래|고려 태조는 도적의 무리|나약한 목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현종|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숙종|조위총을 재조명하다|꼭두각시 군주 명종
6. 고려 역사와 인물의 평가
동진국의 역사|길재, 천지를 붙잡고 일월을 꿰뚫은 절의|압록강의 건너지 않은 김주|양촌은 목은을, 목은은 포은을 따라잡을 수 없다|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최영의 음모

제4부 [동사강목] 수정과 역사 재해석
1. 초고본을 수정하다
완전하지 않은 1760년의 초고본 |연월일 간지와 자구 수정|새로운 사실 추가|내용 수정과 이동
2. 고려 말 역사 서술 문제, 우왕과 창왕
순암이 고심한 우왕과 창왕 문제|폐가입진론을 부정한 임상덕|폐가입진론을 수용한 성호|퇴계가 주장한 ‘우왕=신씨’ 설의 근거|공민왕의 자제위 설치|조선왕조 신하의 의리론
3. 회복된 우왕 창왕의 정통성
신돈의 자식에서 폐위된 국왕으로|‘조민수 열전’ 기록을 삭제하다|이색의 구차스러운 변명|변화한 순암의 역사인식과 역사서술|정도전 무리의 고려사 왜곡

제5부 [동사강목]의 판본과 유통
1. 필사본 동사강목의 종류와 가치
연세대 소장 필사본①: 초고본|연세대 소장본②: 수정본|고려대 소장본|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규장각과 존경각 소장본
2. 구한말 [동사강목]의 유통과 역사교과서
구한말 [동사강목]의 필사와 유통|[동사강목] 필사에 관여한 왕실 친위대|근대학교의 설립과 역사교육|[동사강목]을 계승한 최초의 국사교과서

나가며: 우리 역사의 기초가 된 [동사강목]

부록
[자료 1] 순암이 스승 성호에게 보낸 역사편지―[순암집] 권10 수록 ‘동사문답’ 내용 정리
[자료 2] 성호가 제자 순암에게 보낸 역사편지―[성호전집] 권24~27 수록 편지 내용 정리
[자료 3] 연세대 소장 필사본 [동사강목] 초고본의 수정 내용
[자료 4] 연세대 소장 필사본 [동사강목] 수정 사항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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