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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음배동근 옮김바다출판사

19,800원

책 소개
우리는 고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래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우리는 고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지구상 최대의 생물, 고래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추적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과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본래 네 발 달린 포유류 동물에서 유래한 진화적 기원과, 최신 과학계 보고 등 이 시대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직접 고래를 보러 다닌 저자의 생생한 르포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저자의 문장과 태도에는 기후 위기 시대의 글쓰기를 고민하는 생태적 관계론이 깃들어 있다. 이 유려한 데뷔작은 유력매체들의 서평 릴레이를 받았고 2021년 앤드류 카네기 메달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2020년 Kirkus 논픽션 어워드와 PEN/E.O.윌슨 리터러리 사이언스 라이팅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책은 호주의 퍼스 해변에 떠밀려온 거대한 혹등고래에서 시작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바닷속 고래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현장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저자 리베카 긱스는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복기하며 독자들을 삽시간에 호주의 해변가로 몰입시킨다. 죽어가는 고래의 가뿐 숨소리와 힘이 풀린 동공을 감정에 매몰되지 않은 채 묵묵히 보여 준다. 거기엔 현장에 모인 구경꾼들이 왜 자꾸 고래의 사체가 떠밀려오는지를 두고 벌이는 시시콜콜한 대화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대화들은 두서없지만 지금 우리가 고래라는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낱낱이 드러나는데 그 현장에는 인도적인 죽음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자그마치 자동차 안테나만 한 굵기의 주삿바늘을 찔러 독극물 안락사를 시도할 것인지 다이너마이트를 매달아 폭사를 시도할 것인지, 어떤 것이 고래의 고통을 가장 줄여주는지 고민하던 찰나에 긱스는 그 ‘자비로움’마저 인간의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게다가 그 독극물의 여파는 인간의 자비로움을 만들지언정 사체를 먹고사는 또 다른 생물들, 스캐빈저들(구더기, 까마귀, 하이에나 등)에게는 재앙이 되었던 것이다. (본문 18쪽)
하지만 저자는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그러모은다. 그의 말마따나 심장에 차가운 얼음 조각 하나(본문 180쪽)를 담은 것처럼, 감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작가적 초연함을 유지한다. 프롤로그에 직접 밝혔듯이 “과학적 소양에 바탕한 상상력으로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감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48쪽) 긱스는 고래 주변에는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자신의 머리 위 화관을 울며불며 고래에게 씌우려는 사람, 서핑을 하려 왔다가 멍하니 고래를 보는 사람, 목말을 탄 채 즐겁게 구경하는 어린아이까지 매우 다양하다. 6장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돌고래 셀피 소동을 소개하는데 이 모든 장면은 이 시대 우리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귀여워하고, 사진을 찍고, 슬퍼하며 손을 대는 식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다가가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해저의 오아시스
고래가 품고 있는 자연의 비밀
최신 연구에 따르면 고래는 대기질에 영향을 끼친다. 2010년대 중반 호주 플린더스 대학의 조사 결과였다. 깊이 잠수할 수 있어서 서식 반경이 심해까지 미치는 향고래의 경우 전 세계 대기질 구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심해에서 오징어와 크릴을 먹은 고래들의 배설은 영양 ‘펌프’ 구실을 하며 해저 수많은 유기물질의 순환을 돕는다. (97쪽) 그 과정에서 플랑크톤 번성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플랑크톤들은 전 지구적 규모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숲이 기후 조절 역할을 하듯 동물도 그럴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고래 한 마리는 탄소 흡수에서 1천 그루 이상의 나무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고래의 귀지는 ‘대양의 핵심 표본’으로 불린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입증하는 말랑말랑한 귀지인데 야채 보관실에 오랫동안 내버려 둔 셀러리같이 생겼다. (310쪽) 생물학자들은 이 귀지로 고래의 나이와 그 고래가 평생 노출되었던 오염,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해양 세계에 관한 기록인 셈이다. 고래의 눈도 알면 알수록 새롭다. 직사광선을 맞은 인간의 동공은 수축하지만 대부분의 고래의 동공은 미소를 짓듯 반원으로 수축하면서 반원의 구석에 동그란 점이 남는다. 각각의 눈에 두 개의 동공이 있는 셈이다. 저자는 생태관광 쌍동선을 타고 눈앞에서 거대한 향고래의 점프를 목격했었다. 잔뜩 겁에 질린 저자는 포식자의 시선으로 마주쳤다고 생각했지만 조사를 거듭해 보니 그 동공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확률이 컸다. 이를 계기로 동물 세계에서 인간적 자질을 찾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저자는 다시금 성찰한다. (238쪽)
책에는 그 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래의 다양한 모습을 알려 준다. 크릴 새우를 잡아 먹는 혹등고래의 젖은 핑크빛에 버터 맛이 나며 성게 불모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진 범고래는 털복숭이 팝콘을 먹어 치우듯이 해달을 잡아 먹는다. 또한 고래 낙하라고 불리는 죽은 고래의 몸은 그 자체로 심해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귀중한 ‘해저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멸종 이후에도 관계는 남아’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주의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톰 반 두랜은 생물이 멸종되더라도 그 생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문화적, 생태적 관계는 떠나지 않고 거듭 출몰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멸종해 없어진 박쥐의 리본처럼 길쭉한 혀와 함께 진화한 어떤 꽃의 화려한 꽃부리가 있다. 하지만 ‘혀가 긴 박쥐’가 멸종한 지금 이 꽃부리는 괴이해 보인다. 하지만 꽃마저 멸종되지 않고 계속 번식한다면, 영원히 이 과거의 흔적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실제로 볼 수 없는 존재와 실질적 소통을 한 흔적이다. 고래 또한 마찬가지이다. 포경으로 멸종된 고래 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개체 감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졌다. 고래에게는 멸종보다는 개체 감소로 인한, 포경 시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종의 개체 감소로 그 동물이 속한 생태계, 그들이 양분 삼아 지속하는 환경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앞서 언급된 대기질의 구성에도 우리가 모르는 결정적인 흔적이 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지금은 기후 변화로 고래들의 이주 노선도 바뀌기 시작했다. 캐나다 러미네이션 부족은 먹을 것이 부족해진 고래에게 치누크 연어를 먹이면서 고래를 “바닷속 우리의 동족”이라고 외쳤다.
책에는 다양한 선주민들의 문화와 산업화 이후의 이야기도 다채롭게 들어 있다. 8세기부터 바이킹족은 고래 뼈를 거래했고 16세기에 본격적인 고래 무역이 시작되었다. 서호주 지역의 야부라라족이 만난 최초의 외부인은 고래잡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6쪽) 산업화 이후 돛이 아닌 석탄으로 움직이는 빠른 증기선이 된 포경선들은 지구 전체를 항해하는 고래를 쫓아 대륙을 건넜다. 인류가 한 종에게 가한 최대의 학살이었다. (59쪽) 하지만 고대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혹등고래, 긴수염고래, 향고래, 범고래를 먹었는데 토템 신앙의 대상으로서 섬기기도 했다. 그러나 무역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고래잡이를 했던 고대인들은 정해진 사냥 기간을 준수했고 특정 시기의 고래는 사냥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신화적 존재로 여겼다. 고래 샤먼은 언덕 높이 올라서 고래 대신 고통스러워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우리가 잃어버린 고래와의 관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한다.

우리의 식견이 미치지 못하는 곳
우리는 모두 다른 종의 동물원이다
책은 우리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을 꼬집는다. 하이 콘트라스트 필터의 카메라로 총천연색 자연 사진을 SNS에 올리며 지오태그(위치 정보 해시태그)를 붙이는 생태 관광 인증샷들, 그리고 눈이 큰 털복숭이 동물들 사진의 범람, 그리고 와이파이 통신망이 오지와 고산 지대를 막론하고 촘촘히 깔린 현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독을 찾아 야생을 가지 않는다. 온라인 소통을 위해 자연으로 가는 것이다. 여가 장소를 찾아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능력을 입증하는 열정적인 삶의 방식이 ‘오지로 가는’ 목적이 된 것이다. (196쪽)
저자는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 사랑 개념을 소개한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 환경을 생각하는 선천적 애착이 있다는 다소 관대한 믿음, 개념이다. 하지만 저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아기 돌고래 셀피 소동을 소개하며 이 사랑의 개념을 좀 더 깊이 파고든다. 참고로 이 소동은 해변에 떠밀려온 귀여운 아기 돌고래와 사진을 찍기 위해 군중이 몰려들었던 와중에 결국 돌고래가 죽어 버린 사건인데 이 죽음에서 보듯 우리는 윌슨의 말대로 생명 사랑을 타고 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랑이 상대를 질식시키지 않게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긱스는 ‘귀여운 돌고래’에 대해 열광하는 ‘비정상적인 이끌림’이 열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애정의 대상을 망쳐 버린다고 일침한다. 우리가 아끼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야만적 성급함에 잘 사로잡히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래 또한 그 크기에 비례해서 ‘카리스마’라는 위계를 부여되곤 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직립’하는 짐승과 눈이 큰 포유류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고 한다. 털이 있거나 배가 토실토실한 것도 중요하다. (214쪽)
마지막으로 저자는 고래의 몸에 사는 ‘고래 이’를 소개한다. 고래 이는 갑각류에 속하고 털 많은 육지 포유류에 사는 이보다는 새우에 더 가깝다. 이 한 마리에게 고래 한 마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먹이이다. 고래의 한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면 그 고래와 더부살이하는 고래 이도 같은 처지가 된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자기 중심성’은 사실상 ‘동물원 중심성’에 가깝다. 인간 또한 고래처럼 다른 종의 동물원인 것이다. 기생충과 미세 오염 물질, 미생물로 구성된 내면의 생명이다. 일종의 공동체적 일치의 상태로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 행위의 간접적 여파에까지 우리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때, 다른 동물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린다.
저자소개
리베카 긱스 Rebecca Giggs
미지의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에세이스트. 자연을 관찰하며 기후 위기 시대의 글쓰기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동물에 공감하는 태도와 더불어 과학적 근거를 갖춘 자료 수집과 발로 뛰는 취재를 감행하며 글을 쓴다. 시적이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여러 대륙에 걸친 고래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이 책은 〈뉴욕 리뷰 오브 북스〉로부터 ‘《모비딕》 이후 고래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종종 레이철 카슨과 리베카 솔닛에 비견되는 저자는 데뷔작인 이 책으로 2021년 앤드류 카네기 메달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2020년 Kirkus 논픽션 어워드와 PEN/E.O.윌슨 리터러리 사이언스 라이팅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호주의 퍼스 지역 출신으로 〈뉴욕 타임스〉 〈애틀랜틱〉 〈호주 베스트 에세이〉 〈호주 베스트 과학저술〉 〈그란타〉 〈이언〉 그리고 〈그리피스 리뷰〉 같은 다양한 매체에 해저 환경이나 숲을 주제로 글을 기고해 왔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 픽토(허구) 비평과 생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매쿼리 대학교 영어과에서 창의적 글쓰기를 가르쳤다. 레이철 카슨 센터에서 기술에 의해 활성화된 종 간 친밀감의 형태를 살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기후 위기가 대중에게 막연하게 수용된다는 것에 동감하는 작가, 예술가 들과 함께 기후 공동 협력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긱스는 과학적 소양에 바탕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이 다른 생명체의 감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을 썼다.
목차
프롤로그 낙하하는 고래의 몸

1장 천년의 암각화
2장 가까이 가되 만지지 마시오
3장 이토록 경이로운 뼈대
4장 동물의 카리스마
5장 고래 사운드
6장 포크와 나이프 사이
7장 키치스러운 내부
8장 미지의 표본들

에필로그 고래를 보러 온 사람들
감사의 말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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