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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똑똑한 `두 발`과 가장 빠른 `네 발`의 6천년 공생
말의 세계사 / 피타 켈레크나 지음 / 임웅 옮김 / 글항아리 펴냄 / 3만8000원
기사입력 2019.02.08 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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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역사·문화 코너를 누비다 보면 흔히 마주치는 게 세계사 책들이다. 너무 흔해서 이 책이 저 책 같고 저 책이 그 책 같다. 어디 이뿐일까. 세계사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육박해오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는 바로 부담일 텐데, 정말 학구적이지 않고서야 펼쳐 읽기 짐짓 망설여진다. 투자할 시간도 많고 없는 시간 쪼개어 읽자니 자꾸만 하품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최근 나오는 책들은 전략을 조금씩 바꾸는 중이다. 세계사 앞에 수식어 하나씩을 붙여 저 단어의 아득함을 일부 상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커피의 세계사`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비행하는 세계사` 같은···. 특정 키워드를 전용한 `가두리 세계사`랄까.

사설이 길었는데, 이 책도 그렇다. 이름하여 `말의 세계사`. 오해할 수 있는데 `말(言)의 세계사`가 아니다. `히힝~` 하며 달리는 `말(馬)의 세계사`(원제 `The horse in human history)다. 오호라, 말로 푸는 세계사라니…. 벌써 구미가 좀 당기지 않는가? 그럼 이제 책을 열 차례다.

인간 이전에 말이 있었다. 두 발 달린 인류 시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이 땅에 처음 등장한 건 600만~700만년 전. 말은 이보다 9~10배는 더 오래전인 6000만년 전 나타났다. 재밌게도 책은 창세기 5장을 의식한 듯 `말들의 계보`부터 찬찬히 짚는다.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가 `게난`을 낳고 `게난`이 `마할랄렐`을 낳고, `마할랄렐`이 `야렛`을, `야렛`이 `에녹`을 낳았다는 식으로.

첫 인류가 `아담`이었다면 첫 말은 `히라코테륨`이었다. 몸높이가 25~50㎝인 작고 겁 많은 존재로 즙 많은 나뭇잎과 부드러운 씨앗을 좋아했단다. 성경에 이르길 아담이 930세를 향유하고 눈감았다면, 그는 무려 2500만년가량 열심히 풀을 뜯다 떠났다(약 3390만~2300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소리다).

그에겐 자녀가 둘 있었다. `메소히푸스`와 `미오히푸스`다. 아버지보다 큰 60㎝ 몸높이로 하늘에 계신 당신을 기쁘게 했으나, 마이오세(2033만~533만2000년 전) 기간, 지구 기후가 건조해지며 결국 숨을 거둔다. 책은 이런 식으로 파라히푸스→메리키푸스→플리오히푸스→히파리온군 등으로 이어지는 말들의 계보학 끝에 현생 말이라 할 `에쿠스(Equss)`가 있다고 쓴다.

말들의 창세기를 지나면 말들의 활약기를 읽을 차례다. 이 책의 본론이다. 미리 전제해둘 건, 말의 곁엔 늘 인간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무려 6000여 년이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두 발 동물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네 발 동물의 동반자 관계로, 주된 배경은 원시 문명 중심부가 아닌 초원지대와 사막이다.

저자는 쓴다. "사육된 말과 인간 사이의 공생관계를 분석하다보면 도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유목민 사회의 이동생활에 주목하게 된다…말은 헝가리에서 동쪽으로 중국 국경 지역까지 6400㎞ 넘게 펼쳐진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기원전 제4000년기에 처음으로 사육된 듯 보인다"라고.

말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변방의 인간들을 태워 동서남 문명들을 하나씩 격파해갔다. 때는 기원전 2000년에서 1년. 주체는 전차와 기병이었다. 노골적인 잠복이건 신중한 획득이건 간에 처음에는 전차가, 그다음에는 기병이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모든 문명의 중심지에 도입됐다. 이른바 기마 군국주의다. 반신반인 켄타우루스를 닮은 전차와 기병이 온 대지를 휩쓰니 고대국은 하나씩 멸망해 갔다.

붕괴된 땅에는 기마 제국들이 새롭게 세워졌다. 서쪽으로는 아케메네스 제국이 인도에서 지중해까지 뻗어나갔다. 동쪽에서는 진 제국이 중국 전역을 휩쓸며 위세를 떨쳤다.

말은 문명을 운반하는 매개였다. 때는 기원전후의 전환기. 서방과 동방 간 이국적 물품들이 교환되기 시작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문명과 문명 간 무역이 활성화됐다. 문화와 종교(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유럽과 인도, 중국을 이으며 전파됐다. 인간을 태운 말들이 지구 곳곳을 누비자 지식의 꽃들이 만개했다. 초기 이집트, 바빌로니아, 유대, 인도, 그리스 학문에 기반을 둔 아라비아 학문이 대표적이다. 지구촌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세계 각지 학문에 기초한 지식을 추구하자 인류의 활동에 새 정점을 기록했다.

말 탄 인간의 정복사는 시대와 배경을 총망라했다. 책은 기마 유럽, 이슬람 기마병, 십자군, 몽골 기마병 이야기부터 말 없던 신대륙으로의 말 전파가 빚은 파장 등까지 빈틈없이 써내려 간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이 모든 게 갖는 의미란 뭐란 말인가. 이제 우리는 거의 말을 타지 않지 않은가. 경마라면 몰라도.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이 의문을 염두에 둔 듯 현대 인류에겐 여전히 `기마인의 요소`가 흐른다고 쓴다. 대지를 누비던 기마병처럼 여전히 속도를 추구하고 있고, 카우보이가 입던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말 없는 탈 것(Horesless carriage)`인 자동차와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비행기)를 애용하지 않냐면서. 그러니 지금도 `말의 세계사`는 쓰이고 있다면서. 그러므로 책은 이처럼 고쳐 써도 무방해 보인다. 인간이 써내려간 말들의 `마(馬)약성서`라고.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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