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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발굴한 건 피라미드 아닌 文明이었다
고고학의 역사 /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만3000원
기사입력 2019.10.18 17: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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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아주 오래된 시간마저 현대라는 지층에 되돌려놓는다. 땅에서 발굴돼 세상에 현대인에게 발견될 때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숨결과 호흡을 간직한 생명체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에 전시 중인 `모자(母子)상`의 모습. 아푸안 대리석, 142㎝.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품.
광활한 우주의 티끌, 지구라는 행성을 좀 다른 각도로 조명한다면 이런 정의도 가능하지 않을까. `산 자와 죽은 자가 머무르는 공간`이 바로 지구다.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류 역사는 길게 400만년에 달한다. 영겁을 지나며 인간이 딛고 선 땅에는 기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보물 사냥이든 호기심이든 우연이든, 도처에 흩어지거나 묻힌 시간의 퍼즐을 삽자루 하나 달랑 들고 파내어 꿰맞추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이 땅속에서 발견했던 건 늘 인간 자신이었다.

지중해의 귀퉁이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학문(學文)으로 자리 잡은 고고학 250년사를 다루는 책이다. 2000년 전 유물 위에서 파티를 열어 소유를 과시하던 수집가의 무모함, 무턱대고 왕가의 계곡에서 파라오의 무덤을 몽땅 들어냈던 괴짜의 저돌성, 값나가는 물건을 훔쳐 돈 몇 푼에 귀족에게 팔아넘긴 시정잡배의 사익 추구가 고고학이 아니라고 이 책은 선언한다. 고고학은 인간의 기원을 밝히려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학문이며 인간을 들여다보는 사유의 절정이다. 아래 두 사례는 울림이 크다.

#1. 지금이야 이집트를 상상하면 뾰족한 피라미드를 떠올리지만 200년 전만 해도 이집트는 유럽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였다. 오스만 제국의 영역인지라 접근이 어려웠다. 프랑스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8년 이집트로 출병하면서 농업, 예술, 식물, 기술 분야로 구성된 젊은 학자들과 동행했다. 전투 중엔 보병대 중앙에 네 발 달린 당나귀와 함께 학자들을 배치해 보호했던 관행 때문에 나폴레옹에게서 `당나귀`로 불리던 학자들은 나일강에서 발견된 검은 돌의 문자를 해석했다. 돌이 발견된 마을은 로제타(rosetta), 현재 대영박물관 소장품인 이집트로 향하는 거대한 열쇠, 로제타스톤이었다. `당나귀`들은 이 돌이 기원전 196년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명령문임을 알아냈다. 나폴레옹이 점령한 건 거대한 땅이 아니었다. 수천 년의 시간, 그 자체였다.

#2. 미국 여행가이자 변호사였던 존 스티븐스는 1839년 중앙아메리카 외교관직을 얻어냈다. 영국 화가 프레더릭 캐더우드와 함께 코판으로 가는 `폐허 여행`이 그의 진짜 목표였다. 노새가 진흙탕에 빠지는 우여곡절 끝에 오두막집이 무너져가는 곳에 도착하니 도시가 선명했다. 코판의 중앙 광장엔 돌기둥이 서 있었다. 스티븐스와 캐더우드는 도시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측량했고 관찰했을 뿐, 발굴하지는 않았다. 둘은 팔렌케라는 마을에도 도착했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서기 600년대 파칼 왕이 지배했던 거대한 신전이었다. 현대인은 그곳의 이름을 이제 `마야`라고 부른다. 마야 문명의 첫 근대식 지도를 두 미국인의 집념이 그려낸 것이다. 두 탐험가의 스케치는 단지 이끼 가득한 옛 마을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망각의 덤불에 잠든 문명을 묘사하는 행위였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고고학은 변화해왔다. 전 세계에 몇백 명에 불과했던 고고학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창세기의 시간을 소급해 추산한 6000년 역사보다 인간은 훨씬 길고 긴 시간을 지나쳤음도 고고학은 밝혀냈다.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고고학계에 이제 거트루드 벨과 해리엇 보이드 호스와 같은 여성 고고학자들도 등장했다. 성서에 기록된 니네베를 이라크 북부에서 찾아내거나 하루에 궁전을 두 개나 발견하거나 동아프리카를 평생 헤매며 최초의 인류를 찾아헤맨 고고학자의 일생에 걸친 호기심을 이해하려다 보면 우리 주변의 이 땅이 갑갑해진다.

비발굴고고학이 발전하며 고고학은 또 다른 변화에 직면했다고 저자는 일깨운다. `리모트센싱`이라는 기술로 땅속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발굴 자체가 불필요해졌단다. DNA나 동위원소 분석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스톤헨지의 지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인간은 땅을 파지 않고도 3차원 이미지로 이미 꿰뚫어보는 눈부신 발전을 경험 중이다. 발굴하면 유적은 파괴되지만, 발굴하지 않으면 도난의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선택적 발굴이 필요하다. 발굴과 보존의 양 갈래에서 고고학은 철학적 기로에 직면했다. 시간을 끄집어내거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거나.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간이 이미 만들어낸 능수능란한 타임머신은 아닐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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